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 1902년 3월 30일 서울 청파동 1이 56번지에서 출생. 나성연(羅聖淵)과 김성녀(金姓女) 사이의 1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배재고보를 졸업 후 경성의전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문학 수업을 위하여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그러나 조부가 학비를 보내지 않자, 되돌아와 1919년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1921년 『배재학보』에 「출향」을 발표하고, 뒤이어 『신민공론』에 단편 「추억」을 발표하면서 문필 활동을 시작했다. 1922년에는 박종화(朴鍾和)‧홍사용(洪思容)‧이상화(李相和) 그리고 현진건(玄鎭健) 등과 함께 문예동인지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제2호에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을 발표했다. 또한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환희(幻戱)」를 연재하여 소년 문사로 주목을 받았다.
「녯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1922), 「17원 50전」(1923), 「은화」(1923), 「춘성(春星)」(1923) 등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다가, 「여이발사」, 「행랑자식」 등을 발표하면서 사실주의적 경향으로 전환한다. 1924년에 「자기를 찾기 전에」,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을 발표하고,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 등의 완숙한 작품을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다.
1926년에 수학(修學)의 뜻을 품고 일본에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 후 폐병을 앓으면서 단편 「피 묻은 몇 장의 편지」, 「지형근」, 「화염에 싸인 원한」 등을 발표했다. 1926년 8월 26일 사망했다. 사후에 장편 「어머니」(1939)가 출간되었다. 그는 가통인 의술을 이으려는 조부의 고집으로 방랑과 낭만의 꿈이 짓밟혀 실연과 병과 가난 속에서 단편 20여 편과 장편 2편, 그리고 「그믐달」(1925) 등 수필 몇 편을 남기고 있다. 그의 소설은 초기에는 백조파 특유의 감상적(感傷的)이고 환상적인 경향으로 흘렀다.
그러나, 「여이발사」 이후에 사실적인 경향으로 변하여 사소한 사건이라도 냉철하게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사실주의 소설의 전형인 「뽕」, 「물레방아」 같은 수작을 남겼으며, 탐미적 경향인 「벙어리 삼룡」으로 단편소설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
*소설가 : 나도향
1902년 03월30일 서울 청파동 출생
1919년 배제고보 졸업, 경성의전에 입학후 도일, 귀국후 경북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교원 근무 /
1921년 <배재학보> 2호에 <출학>발표
1922년 홍사용, 이상화,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 발간
1926년 재차 도일
1927년 08월26일 사망
*주요작품 :
물레방아,벙어리 삼룡이,여이발사(女理髮師),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지형근,행랑자식,그믐달,춘성,출학,하고싶은 말 두엇,화염에 싸인 원한,환희 - 처녀작 발표 당시의 감상,병상예어,뿌르니 푸로니 할 수는 없지만,은화 백동화,이러하게 살고 싶다,이태원에서,자기를 찾기 전,전차 차장의 일기 몇절,젊은이의 시절,정의사의 고백,주노애이,17원 50전,계집하인,그믐 달 단상 두개,무제 - 편집후기 중에서,문단으로 본 경성,미정고,미지수인 문학계,벽파상에 일엽주,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단상(斷想) 두 개,꿈,뽕,추억,피묻은 편지 몇 쪽,당착,속 모르는 만년필 장사,지난 일 년의 알쏭달쏭 수놓은 돗자리,별호(別號),쓴다는 것이 죄악 같다,내가 믿는 문구 몇 개,유행,찾아나 볼까,오늘엔 날더러 서방님 하지만,사랑고개,청춘(靑春),어머니,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