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소설 : 김동인 3편 (할머니가 전해주는 코리안나이트 : 야사)
야담이 20세기 대중 오락으로 탄생되는 계기는 1920년대 ‘조선학 열풍’에서 찾을 수 있는데, 조선인으로 조선어와 조선사를 알어야 하겠다는 향학열을 확산시키기 위한 민족주의적 기획아래 많은 역사 저작들이 나타났다.
이때까지 역사는 지식인의 전유물이 였던 반면에, 1920년대 많은 신문과 잡지가 창간되면서 역사물을 위한 공식적인 담론의 장이 부활했고, 이를 배경으로 ‘전기(傳記), 사담(史談), 전설, 비사(秘史), 기인기담(奇人奇談), 애화(哀話), 애사(哀史), 사화(史話), 야담’ 등의 다양한 역사물들 등장하면서, 국민적 열풍이 만들어졌고, 역사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국한문으로된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역사물은 한문을 해독할 수 있는 독자층만을 대상으로 했고, 한글로 쓰였다고 해도 절대 문맹률 수치가 높았던 일제 강점기 한국에서 인쇄매체를 통한 역사의 대중화는 어려웠다.
김동인(金東仁)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
1920년대부터 가세가 몰락하면서 대중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시어딤 창작집'(창조사)을 자비로 발간했다. 1924년 8월 동인지 '영대'를 창간하여 1925년 1월까지 발간했다. 1930년 9월부터 1931년 11월까지 동아일보에 첫 번째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연재했다. 1932년 7월 문인친목단체인 조선문필가협회 발기인, 위원 및 사업부 책임자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