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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비화> 장희빈 일대기 (숙종과 민비 그리고 희빈 장씨의 삼각관계)

<궁중 비화> 장희빈 일대기 (숙종과 민비 그리고 희빈 장씨의 삼각관계) 장희빈 張禧嬪 (? 1701) 조선 숙종의 빈(嬪) 장씨(張氏), 소의(昭儀)라는 품계. 숙종은 오래도록 아들이 없다가 궁녀 장소의를 가까이 하여 1688년(숙종 4) 왕자 균(?:景宗)을 낳았다. 왕은 기뻐하여 세자로 봉하려 하였으나 송시열(松時烈) 등 당시 집권을 잡고 있던 서인이 지지하지 않으므로 남인들의 원조를 얻어 책봉하려 하였다. 이에 서인의 노·소론(老少論)은 모두 아직 왕비 민씨(閔氏)가 나이가 많지 않으니 후일을 기다리자고 주장하였다. 숙종은 듣지 아니하고 1689년(숙종 15) 정월에 세자를 봉하고 장소의를 희빈(禧嬪)으로 봉했다. 이때 송시열이 세자를 봉함이 아직 빠르다고 상소하니 왕은 이..
<궁중 비화> 장희빈 일대기 (숙종과 민비 그리고 희빈 장씨의 삼각관계)

장희빈 張禧嬪 (? 1701)
조선 숙종의 빈(嬪) 장씨(張氏), 소의(昭儀)라는 품계. 숙종은 오래도록 아들이 없다가 궁녀 장소의를 가까이 하여 1688년(숙종 4) 왕자 균(?:景宗)을 낳았다.

왕은 기뻐하여 세자로 봉하려 하였으나 송시열(松時烈) 등 당시 집권을 잡고 있던 서인이 지지하지 않으므로 남인들의 원조를 얻어 책봉하려 하였다. 이에 서인의 노·소론(老少論)은 모두 아직 왕비 민씨(閔氏)가 나이가 많지 않으니 후일을 기다리자고 주장하였다.

숙종은 듣지 아니하고 1689년(숙종 15) 정월에 세자를 봉하고 장소의를 희빈(禧嬪)으로 봉했다.
이때 송시열이 세자를 봉함이 아직 빠르다고 상소하니 왕은 이미 명호(名號))가 결정된 다음에 이런 의견을 말하는 것은 무슨 일이냐고 분노하자, 남인 이현기(李玄紀)·남치훈(南致薰)·윤빈(尹彬) 등이 송시열의 상소에 논박하며, 파직시켜 제주도로 유배하게 하고 다시 사사(賜死)케 하였으나 중로 정읍(井邑)으로 이배(移配)되었다가 사약을 받았다.

이 밖에 서인의 영수들도 파직 또는 유배(流配)를 면치 못하였고, 반면에 남인의 권대운(權大運)·김덕원(金德遠) 등이 등용되었다.

이 정권의 교체를 기사환국(己巳換局) 또는 기사사화(己巳士禍)라고 한다. 이해 5월에 다시 민비를 폐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삼으려 할 때 서인 오두인(吳斗寅)·박태보(朴泰輔) 등 80여 명이 상소하여 이를 반대하였으나 도리어 참혹한 형문을 받게 되니 이후 정국은 남인의 세상이 되었다.기사환국 후 시간이 감에 따라 숙종은 폐비(廢妃)사건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684년(숙종 20)에 서인의 김춘택(金春澤)·한중혁(韓重爀) 등이 폐비의 복위운동(復位運動)을 꾀하다가 고발되었다. 이때에 남인의 영수요 당시 우상(右相)으로 있던 민암(閔?) 등이 이 기회에 반대당 서인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김춘택 등 수십 명을 하옥하고 범위를 넓히어 일대 옥사(獄事)를 일으켰다.

이때 숙종은 폐비에 대한 반성으로 옥을 다스리던 민암을 파직하고 사사하였으며, 권대운·목내선·김덕원 등을 유배하고 소론(少論) 남구만(南九萬)·박세채(朴世采)·윤지완(尹趾完) 등을 등용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내리었는데 이것을 갑술옥사(甲戌獄事)라고 한다. 또한 이미 죽은 송시열·김수항 등은 다시 복작(復爵)되고, 남인은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소론이 들어서고 남인이 물러나게 될 때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張希載)가 희빈에게 보낸 서장(書狀) 속에 폐비 민씨에 관련된 문구가 논쟁이 되어 여러 사람이 장희재를 죽이자고 하였으나, 세자에게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남구만·윤지완 등이 용서하게 하였다. 그런데 후에 왕비 민씨가 죽은 다음에 장희빈이 취선당(就善堂) 서쪽에다 신당(神堂)을 설치하고 민비가 죽기를 기도한 일이 발각되었다.

이 일에 관련된 희빈과 장희재는 살해되고, 궁인(宮人)·무녀(巫女)와 그 족당(族黨)도 화를 입게 되었다.
이것을 무고의 옥(巫蠱-獄)이라 하는데 이때에 장희빈에 대하여 관대한 태도를 취한 남구만·최석정(崔錫鼎)·유상헌(柳尙憲) 등 소론의 선비들도 몰락하게 되고 다시 노론이 득세하게 되었다. 숙종은 이후 빈어(嬪御)에서 후비(后妃)로 승격되는 일을 없애는 법을 만들었다.
*차상찬[車相瓚]
수필가 · 시인 · 언론인. 강원도 춘천 출생.
호는 청오(青吾).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졸업. 한때 모교에서 교직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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