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 vs 을지문덕전
: 같은 인물 다른 작품! 동시에 읽는 소설 : 을지문덕 열전!
* 같은 인물, 다른 작품(다른 느낌)을
한 권으로 함께 있는 E-BOOK 시리즈 입니다.
* <신채호> 작가의 "을지문덕전"
* <김동인> 작가의 "을지문덕"
한국 전쟁사의 4대첩 중 첫번째로 "살수대첩"이라 말할 수 있다.
살수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을지문덕> 장군!
살수 대첩(薩水大捷)은 제2차 여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장식한 살수에서의 전투이다.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직공했던 수나라의 별동대가 살수에서 강을 건너 돌아오던 중 을지문덕의 습격을 받아 궤멸했다. 귀주대첩, 행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한민족 4대첩의 하나로 불린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고구려 영양왕(재위: 590년 ~ 618년) 때의 장군이다.
수나라의 제2차 침입을 물리친 장수로 유명하다. 612년 수 양제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는데 요동성에서 지지부진하자 별동대 30만 5천 명을 뽑아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직공하였다.
별동대는 평양 근처까지 진격하기는 했지만 모두 을지문덕의 유인작전이었고, 극도의 피곤과 군량 부족으로 인해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별동대가 살수(薩水, 지금의 청천강)에서 강을 건널 때 습격하여 궤멸시켰다.
아홉 군이 처음 요하에 이르렀을 때의 병력은 305,000명이었으나 그 중에 요동 반도로 다시 돌아온 자는 겨우 2,700명이었다. 수많은 군수물자와 공성병기는 모두 잃어버렸다. 양제는 크게 노하여 우문술 등을 쇠사슬로 묶고 7월 25일(음력)에 본대 병력을 이끌고 철수하니 제2차 여수전쟁은 고구려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다.
우문술 등 살아남은 장수들은 모두 작위가 박탈되고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다만 설세웅은 분전한 점이 감안되어 면직으로 그쳤고, 위문승은 홀로 전력을 보전한 채 퇴각한 공이 있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승진했다. 을지문덕을 잡을 기회를 놓치게 했던 유사룡은 참수되었다. 양제는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고구려 정벌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듬해 우중문을 제외한 모든 장수를 복권시키며 제3차 여수전쟁을 일으킨다.
* 작가 : 신채호
독립 운동가이자, 언론인, 역사학자, 소설가이다.
호는 단재(丹齋),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이다.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열혈생(熱血生), 한놈, 검심(劍心), 적심(赤心), 연시몽인(燕市夢人)이다. 가명은 유맹원(劉孟源)이다.
* 작가 : 김동인(金東仁)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 대표작품
〈배따라기〉
〈감자〉
〈광화사〉
〈붉은 산〉
〈운현궁의 봄〉
〈광염소나타〉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