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호동 vs 순정의 호동왕자
: 같은 인물, 다른 작품! 동시에 읽는 소설 - 호동왕자 열전!
* 같은 인물, 다른 작품(다른 느낌)을 한 권으로 함께 있는 E-BOOK 시리즈 입니다.
* <윤백남> 작가의 "순정의 호동왕자"
* <김동인> 작가의 "왕자호동"
# 부록:
- 정열의 낙랑공주 (윤백남 작품)
호동(好童)
고구려의 제3대 국왕 대무신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갈사왕의 손녀이자 대무신왕의 차비(次妃)이다.
낙랑 정벌에 공을 세웠으나 원비(元妃) 소생의 이복형제 해우(훗날 모본왕)와의 태자 다툼에서 패하여 자살하였다. 아내 낙랑공주와의 이야기가 창작물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기원후 32년(대무신왕 15년) 음력 4월, 호동이 옥저로 출타했을 때 낙랑왕 최리(崔理)를 만나 그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였다. 이후 호동 혼자 고구려로 돌아와 낙랑공주에게 사람을 보내 낙랑 무기고 안의 북과 나팔을 부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면 예를 갖춰 맞이하겠다고 하였다.
그 북과 나팔은 적이 침입하면 저절로 소리를 내는 물건이었다.
낙랑공주는 북을 찢고 나팔을 쪼갰으며 이에 호동은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습격하였다. 최리는 미처 대비하지 못하다가 고구려군이 성 밑에 와서야 그 침입과 딸의 배반을 알았다. 결국 자신의 딸을 죽이고 고구려에 항복하였다.
* 작가 : 김동인(金東仁)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 작가 : 윤백남(尹白南)
1888년 11월 7일 ~ 1954년 9월 29일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예술인이다.
배우, 극작가, 소설가, 언론인, 영화감독, 연극 제작자, 영화 제작자 등을 다양한 직업을 겸했다. 본명은 윤교중(尹敎重)이다.
《매일신보》에 단편소설 《몽금》을 발표하였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1930년에 동아일보에 한국 최초의 대중소설인 《대도전(大盜傳)》을 연재하였고, 큰 인기를 끌면서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1930년대에는 야담 운동에 뛰어들어 많은 야담 작품을 발표했고, 1934년 10월 월간지 《야담》을 창간하였으며, 1937년에 만주로 이주해 역사 소설을 썼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귀국하여 조선영화건설본부의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53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 학장을 맡고 대한민국예술원 초대 회원을 지냈다.
연극, 영화,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 문화의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한 계몽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