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남북조 시대와 수의 통일
(중국 역사 다이제스트 시리즈! 44)
1. 삼국시대와 진의 통일
1) 3국시대(三國時代)
* 위 : 조조
* 오 : 손권
* 촉(촉한) : 유비.관우.장비
2) 진의 통일과 정책
2. 남북조 시대와 이민족 중국 침입
1) 팔왕의 난 & 영가의 난
2) 5호 16국의 대립
3) 남북조 시대 : 북위의 화북 통일
4) 남북조시대 관제
3. 육조시대의 문화
* 육조시대[六朝時代]?
* 불교의 융성
* 도교의 성립
* 육조시대의 문인
4. 수의 통일
1) 수(隋)의 건국과 대외 정책
2) 수의 멸망
한제국 말기에는 호족(豪族)이 차차 세력을 넓혀 황건(黃巾)의 난을 계기로 하여 드디어 3국으로 분립되고, 위(魏)·오(吳)·촉(蜀, 蜀漢)의 3왕조가 성립되었다.
위는 화북의 황하 유역에서 조조(曹操)가 둔전(屯田)이나 수리(水利) 정책을 행하여 화북을 통일했고, 그 아들 조비(曹丕)가 스스로 문제(文帝)라 칭하고 뤄양(洛陽)을 수도로 하고 중앙집권적 정치를 했다.
촉은 양쯔강 상류의 청두(成都)를 중심으로 유비(劉備)가 제위(帝位)에 오르고, 오는 양쯔강 하류의 강남(江南)에 근거를 두고 손권(孫權)이 건업(建業:남경의 옛이름)에서 제위에 올랐다.
위가 가장 강했으므로 오·촉이 협력, 위에 대항하고, 촉상(蜀相) 제갈량(諸葛亮)은 수차 위를 괴롭혔으나 그의 사후 얼마 안되어 촉은 위에게 망했다.
호 16국 시대에 소위 중국 북반부의 이민족 국가의 난립을 통일한 것은 북위(北魏)였다.
5호의 하나인 선비족의 탁발부(拓跋部)는 2세기경 중국 북동부에서 차츰 남하해 왔다. 서진(西晉)은 315년 이들에게 산시(山西) 북부의 땅을 주고, 그 군장(君長) 탁발의노(拓跋倚盧)를 대왕(代王)으로 봉했다.
이윽고 서진이 망하자, 대왕 탁발규(拓跋珪, 道武帝)는 자립하여 386년에 국호를 위라고 했다. 도무제는 중국 진출을 개시해 국도평성(平城, 현재의 大同) 부근에 백성을 강제 이주시켜서 국력의 충실에 노력했다. 이것은 후의 황제들에게 계승되었고, 태무제(太武帝) 때에 남아 있던 하(夏)·북연(北燕)·북량(北凉)을 멸망시키고 439년 드디어 화북 통일을 완성했다. 여기서 남북조 시대가 시작된다.
수(581 618)는 원래 북조의 하나인데 후에 통일왕조가 되었다.
위(魏)·진(晋)·남북조(南北朝)의 분열시대 이후 중국에는 수(隋)의 뒤를 이어 당(唐)에 의한 통일시대가 계속되었다. 그 수 왕실의 양씨(楊氏)와 당 왕실의 이씨(李氏)는 수에 앞선 북주(北周) 왕실의 우문씨(宇文氏)와 함께, 북위(北魏)가 북변에 배치했던 군단(軍團)의 하나인 무천진(武天鎭) 군벌 출신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북위는 원래 몽골지방에 있던 선비족(鮮卑族)인 탁발씨(拓跋氏)가 화북(華北)에 들어가 한(漢) 민족을 정복하고 세운 왕조(王朝)였으나, 화북에 들어간 그들은 새로 몽골지방을 점령한 유목민과 항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it끌림편집부 편엮
<역사 다이제스트> 한국사 & 세계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