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 시인 (해파리의 노래) 한국 최초 창작 시집
김억(金億, 1896년 11월 30일 ~ ?)은 한국의 시인이다. 호는 안서(岸曙),
본관은 경주, 본명은 김희권(金熙權)이며, 호를 따라 김안서(金岸曙)로도 종종 불린다.
시집으로 번역 시집인 《오뇌의 무도》(1921)와 창작 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 《봄의 노래》(1925), 《먼동 틀 제》(1947), 《민요시집》(1948)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오뇌의 무도》는 최초의 번역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최초의 창작 시집으로 기록되어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제1장 ‘꿈의 노래’에는 <꿈의 노래> · <피리> · <내설음> 등 12편,
제2장 ‘해파리의 노래’에는 <능금과 복숭아> · <눈> · <십일월의 저녁> 등 9편,
제3장 ‘표박(漂泊)’에는 같은 제목의 연작시(連作詩) 6편,
제4장 ‘스핑쓰의 설움’에는 <하품론> · <입> · <아츰잠> 등 9편,
제5장 ‘황포(黃浦)의 바다’에는 <황포의 바다> · <참살구> · <사향(思鄕)> · <꽃의 목숨> 등 14편,
제6장에 ‘반월도(半月島)’에는 <밤의 대동강가에서> · <강가에서> · <기억(記憶)> 등 8편,
제7장 ‘저락(低落)된 눈물’에는 <저락된 눈물> · <우정(友情)> · <탈춤> 등 6편,
제8장 ‘황혼의 장미’에는 <때> · <죽은 기억> · <낙엽> · <실제(失題)> 등 10편, 그리고
제9장의 ‘북방(北邦)의 소녀’에는 <북방의 소녀> · <유랑의 노래> · <무덤> 등 9편이 각각 실려 있다
* 김억(金億)
현대시인. 평론가. 본관은 경주. 초명은 희권(熙權), 뒤에 억(億)으로 개명하였으며, 필명으로 안서 및 안서생(岸曙生), A. S., 또는 본명 억(億)을 사용하였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 아버지는 기범(基範)이며, 어머니는 김준(金俊)으로 5남매 중 장남이다.
오산학교(五山學校)를 거쳐 1913년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영문과 중퇴. 그 뒤 오산학교(1916)와 숭덕학교(崇德學校) 교원을 역임하였고, 동아일보사(1924)와 매일신보사 기자를 지냈으며, 한동안 《가면(假面)》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6 · 25남침 당시 피난하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그의 계동 집에서 납북되었고, 그 뒤의 행적은 알 수가 없다.
<출처 및 인용> 김억 (국어국문학자료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