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퐁텐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촌철살인 이야기 13
라 퐁텐 동화 작가 인간 세태 풍자 모음집
장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의 '옛날 전설 이야기(Tales and Novels of J. de La Fontaine)'는 그의 후반기 작품 경향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집이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작인 '우화집'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인다.
'옛날 전설 이야기'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우화나 교훈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소설, 특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같은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은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라 퐁텐은 이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위선, 사랑과 욕망의 복잡한 면모를 풍자하고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옛날 전설 이야기'의 주요 특징 및 분석]
1) 세속적이고 사실적인 주제: 이 작품들은 신화나 신의 이야기를 다루기보다는, 주로 인간 사회 내부의 관계와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부부 관계, 불륜, 비밀 연애, 그리고 재산과 명예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이는 도덕적 교훈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인간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드러낸다.
2) 풍자와 해학: 라 퐁텐은 직설적인 비판 대신 풍자와 해학을 통해 사회의 위선과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어리석음이나 모순된 행동을 과장하거나 아이러니컬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동시에, 그 속에 담긴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남성들의 허영심, 여성들의 교활함, 그리고 부모들의 위선적인 태도 등이 자주 풍자의 대상이 된다.
3) 성적인 암시와 노골성: '옛날 전설 이야기'는 '우화집'에 비해 더욱 노골적이고 성적인 암시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라 퐁텐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반영하며, 이는 도덕적 제약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일부 독자들에게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했다.
4) 세련된 문체와 운율: 라 퐁텐은 이 이야기들을 시의 형태로 썼다. 이는 그의 뛰어난 언어 구사 능력과 운율 감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유려하고 간결한 문장을 통해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하고, 독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시적 형식은 다소 노골적인 내용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예술적 가치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5) 개인의 자유와 본능적 욕구 강조: 작품 전반에 걸쳐 개인의 자유와 본능적인 욕구에 대한 옹호적인 시선이 깔려 있다.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제약보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욕망을 중요하게 다루며, 이를 억압하려는 시도들이 결국은 실패하거나 우스꽝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6) 전통 이야기의 재해석: 라 퐁텐은 기존에 존재하던 이야기들을 단순히 번역하거나 재수록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과 문체를 더하여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는 원작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현대 독자(당시의)의 취향에 맞게 내용을 각색하고, 자신의 철학적 시선을 담아낸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촌철살인 이야기'는 라 퐁텐이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우화 작가가 아니라,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사회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꿰뚫어 본 성숙한 작가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의 문학적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후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장 드 라 퐁텐
장 드 라 퐁텐 (Jean de La Fontaine) 은 17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우화 작가이다. 그는 1621년 7월 8일 샹파뉴 지방 샤토-티에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삼림 관리인이었다.
그의 정식 교육은 다소 소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타고난 천재성과 문학적 재능으로 이를 만회했다. 젊은 시절 그는 법률을 공부했지만, 곧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22세 무렵, 말레르브의 시를 우연히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고대 로마의 페드루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테렌티우스를 비롯해 그리스의 플루타르코스, 호메로스, 플라톤, 프랑스의 라블레, 마로, 뒤르페, 이탈리아의 타소, 아리오스토, 보카치오 등 수많은 고전 및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하며 폭넓은 문학적 지식을 쌓았다.
라 퐁텐은 가족의 뜻에 따라 미모와 재치를 겸비한 여성과 결혼했으나, 이 결혼 생활은 그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삶은 흡사 "끊임없는 방황"이라 할 정도로 자유분방했다. 사회 속에 있으면서도 사회로부터 벗어나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대중에게는 다소 어리숙하게 비쳤다. 그러나 그는 매우 영리하고 상냥한 사람이었으며,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소수의 책과 소수의 친구만을 두었다고 한다.
라 퐁텐은 당대 최고의 문인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았다. 특히 두 귀부인의 후원 덕분에 가난을 면할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인 라 사블리에르 부인은 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였으며, 라 퐁텐은 그녀의 집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며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다작 작가였으며, 《라 퐁텐 우화집》과 《프시케와 큐피드의 사랑 이야기》는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우화집은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 사회의 다양한 면모와 도덕적 교훈을 재치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장 드 라 퐁텐은 1695년 3월 16일 생을 마감했으며, 파리의 생 조제프 묘지에 몰리에르 옆에 안장되었다. 그의 무덤은 시인들과 문학 애호가들에게 성지로 여겨진다. 그의 사후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그의 흔적을 찾아 방문했으며, 프랑스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의 문학적 유산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