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상섭(尙燮), 호는 횡보(橫步). 1897년 8월 30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보성소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 2월 『동앙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0년 7월 김억(金億)‧김찬영(金瓚永)‧민태원(閔泰瑗)‧남궁벽(南宮璧)‧오상순(吳相淳)‧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김환(金煥)의 「자연의 자각」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김동인(金東仁)과 논쟁을 벌였다.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한 이후 「암야」, 「제야」 등을 발표했다
8‧15 광복 후 귀국하여 1946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되었으며, 「두 파산」, 「일대의 유업」과 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한국전쟁 중에는 한때 해군소령으로 복무했고, 1954년에는 한국전쟁 중의 서울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장편 「취우」로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예술원 창설과 함께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다. 1955년 서라벌예대 초대학장을 지냈으며, 이듬해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 1957년 예술원공로상, 1962년에는 삼일문화상 예술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1963년 3월 14일 직장암으로 사망했다.
- 출처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인용)-
* 소설가 : 염상섭(廉尙燮)
- 출생 ~ 사망 : 1897. 8. 30. ~ 1963. 3. 14.
- 호 : 횡보(橫步)
- 데뷔 : <표본실의 청개구리> 발표(1921)
* 경력
1920. 2. ~ 동앙일보 창간과 함께 정경부 기자로 활동
1920. 7. ~ 동인지 폐허를 창간 주간종합지 동명의 기자
1929년 ~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활동
1936년 ~ 만선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
1946년 ~ 경향신문 편집국장
1955년 ~ 서라벌예대 초대학장
* 수상
1954년 작품명 '취우' - 「취우」로 서울시 문화상
1956년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
1957년 예술원공로상
1962년 삼일문화상 예술부문 본상